Day 1. 도하 - 베를린

오사카를 거쳐 가기 때문에, 탑승객이 별로 많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카타르 항공을 이용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가격이 싸기 때문에 주로 여행사에서 단체 상품을 판매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 국가의 위치상 유럽에 갈 때 시간 단축이 적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아무튼 의외였다.

작년에 프랑스 갈 때 13시간을 앉아 간 게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어, Exit석으로 받았다. 공간도 넓고, 예쁜 스튜어디스들과 이착륙 시 얼굴도 마주볼 수 있으니, 옆자리에 앉을 사람만 좀 괜찮으면 완벽! 이라고 생각했는데...불행히도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뚱뚱한 미국 아저씨였다. 얼마나 뚱뚱했냐면, 좌석에 앉으니 팔걸이가 양쪽으로 밀려날 정도였다는...게다가, 왜그리 말이 많은지-_-;;; 나한테 말을 거는 것 뿐만이 아니라, 앞에 앉은 스튜어디스는 물론 나를 지나 저쪽 옆에 앉은, 휴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한국 크루들한테도 이야기를 걸어서, 출발하고 나서 세네시간은 매우 피곤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가운데 좌석이 낫지-_-;

오사카에서 크루 체인지를 하고, 추가로 승객을 더 태운 다음에 드디어 도하로 출발했다.

오사카를 출발하고 난 후에 나온 식사. 맥주를 캔으로 달라고 했더니, 라마단 기간이라고 저렇게 잔에다 나눠줬다.
음식은 그럭저럭 맛있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비행기에 탈때마다 느끼지만, 좁은 공간에서 자꾸 뭔가를 먹이니 마치 사육당하는 것 같다. 양계장에서 우리에 갇혀있는 닭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닭짓을 하면서 시간으로 보내고 나니, 창밖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착륙 안내방송이 나왔다. 착륙 시간이 아침 5시 경이었는데, 그때 이미 먼동이 트고 있었다. 도하에서는 7시간 정도 머무르기 때문에, 그 사이 동생을 만나 동생 숙소에서 좀 쉬다가 같이 베를린으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비자를 구입하고, 수화물을 찾으러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워낙에 동생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지라, 덜컥 겁부터 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무전기와 체크보드를 들고 있는 공항 직원이 있어, 그에게 택을 보여주고 사정을 설명했다. 어딘가에 무전으로 연락을 하더니, 찾아보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라 했다. 한 20분 지났을까. 그때에도 암말도 안하기에 가서 어찌되었나 물었더니, 어이없게도 내 짐이 인천에 있다는 것이다-_-; 이건 또 뭔소린지...

그럴리가 있냐고, 말도 안 된다면서 다시 확인해보라 했더니, 또 어디론가 무전으로 우물우물...그랬더니 잠시 후에는 다른 직원이 와서 하는 얘기가, 내 짐이 베를린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건 또 뭐임...하면서 사정을 들었더니, 티켓상으로 내 목적지가 베를린으로 되어있어, 인천에서 화물을 부칠 때 목적지를 도하가 아니라 베를린으로 넣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부친 짐이 내 것이 아니라 동생을 주려고 산 책과 음식이었던 것. 이거 여행다니는 내내 책 한보따리와 김 두상자, 쥐포, 더덕무침, 멸치볶음을 들고 다녀야하는거 아냐...라는 생각은 잠시, 다시 무전으로 확인해보니, 아직 비행기에 싣지 않았고, 찾아놓을 테니 몇 시간 후에 다시 공항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다시 공항에 와야한다는 것이 좀 짜증났지만 여행중에 들고다니는것보단 낫지. 하는 생각으로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이런 저런 소동 때문에 한시간이나 늦게 나오게 되었다. 밖으로 나오니,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감격적인 재회...라고 하기에는 얼마 전에 봤으니 머-_-; 안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니, 이 나라가 좀 그렇단다-_-; 숙소가 공항에서 가까우니, 일단 집으로 가서 기다리고 조금 이따가 다시 찾으러 오기로 했다.

난생 처음 방문한 중동의 도시, 도하는, TV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중동 도시의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모래색의 건물들이나 군대군대 심어진 야자나무는 중동의 모습이지만, 거리에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더워서 도보나 버스로 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또 카타르는 국가에서 국민들에게 용돈-_-;(매달 7,000달러 정도)을 주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나 필리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카카타르 거리 모습. 다니는 차들은 대부분 일본차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십여분을 가니, 동생 숙소 건물이 나왔다. 차에서 내리니, 후덥지근하고 텁텁한 공기가 느껴졌다. 뭔가 공사현장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량하고 먹먹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니, 매일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에서 보안 요원에게 패스포드를 보여주고 서명을 한 뒤 동생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보안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것 같아 안심이었다.

 동생의 숙소. 두 명이 같이 쓰고 있다고 한다. 화장실이 딸린 개인 방이 기본이고, 거실과 주방이 갖춰져 있다.

주방과 동생의 방. 더운 나라답게 방마다 에어컨이 다 달려있다.

뭔가 숙소가 넓긴 넓은데 썰렁하다-고 했더니, 이 건물이 좀 이렇단다. 다른 곳은 벽지나 바닥재 같은 것이 잘 되어있다고. 그래서 다른 건물로 옮기려 신청해놓았다고 했다. 다행히 TV에서는 한국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다음 비행시간까지는 6시간 정도가 남아있어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식사 준비를 하는 중, 옆집에 사는 동생의 동료(한국인)이 찾아와 셋이서 같이 식사를 했다. 주변 환경이 이래서, 어디 바깥에 돌아다니지를 못해 대부분의 크루들이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듣기만 할때는 몰랐는데, 직접 와서 보니 십분 이해가 갔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의 사람들이 이런 감옥같은 곳에 갖혀있으니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닐로 꼭꼭 막아놓은 창문. 창문을 닫아놓고 있어도 틈새로 모래먼지가 들어와 이렇게 하고 있어야 한단다.
과연 막아놓은 비닐 아랫쪽에 모래먼지가 그득히 쌓여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승무원 생활과 카타르에서 사는 것에 대해 이것 저것 얘기를 들었다. 수당의 큰 부분이 Meal Pay다 보니, 물가가 비싼 곳을 갈 때는 라면이나 쌀 같은 걸 가져가서 호텔 내에서 식사를 해결한다고 한다. 그걸 뭘로 끓여먹나 했더니, 부식과 미니 전기곤로를 아예 셋트로 갖추어놓고 있었다.

전기곤로, 코펠, 라면, 초컬릿, 쌀, 참치, 양념 등등. 캠핑을 방불케하는 장비?들이, 뒷쪽의 조그만 가방에 쏙 들어간다.


이렇게 끼니를 떼우다가도 동남아같이 물가가 싼 나라에 가면, 각종 과일 등등을 잔뜩 사와서 넣어놓고 먹는다 한다. 카타르는 공산품은 싼 대신, 야채나 과일, 생선 등등은 매우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 돼지고기는 아예 금지-_-; 정말 가지가지로 난관이 많은 곳이었다.

식사를 하고, 동생은 공항으로 수화물을 찾으러 가고, 나는 잠을 조금 자기로 했다. 낯설어서일까. 비행기 안에서 그다지 눈을 붙이지 못했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갑작스레 군 입대 첫날밤, 낯선 내무반 천장이 떠오르며, 동생이 이 나라에 온 첫날 밤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래저래 뒤척이다 그냥 일어나 앉아, 컴퓨터로 메신저에 접속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딱 10시 즈음. 우리 회사의 출근시간이다. 아니나다를까. 접속하자마자 팀 사람들이 한꺼번에 메시지를 보내왔다-_-; 금요일이라 막 주간회의를 시작할 때였으니, 막간 쉬는시간에 다들 심심했던 모양이다. 내 휴가를 써서 간 건데도 불구하고, 다들 일하는데 나만 놀러나와있으니 뭔가 미안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동생이 짐을 찾아들고 돌아왔다. 별 것 아니라 생각됐던 책과 음식들이, 여기서 보니 정말로 간절한 것으로 느껴졌다. 가져온 것을 대충 정리하고, 공항에 가서 쇼핑이나 하고 커피나 마시자 하고 조금 일찍 숙소를 나왔다.

거리와는 달리, 공항은 제법 깔끔하고 널찍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면세점도 꽤 잘 갖춰져 있었다. 중동이라 유럽과 아시아에서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 꽤나 북적이고 있었다. 면세점을 대충 구경하고, 비행 중 먹을 간식을 간단히 사 들고 게이트 앞 카페테리아로 나갔다. 음식을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져, 둘이서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당에서 먹은 비프커리와 애플민트티. 식사는 그럭저럭이었지만 음료가 깔끔하고 시원하니 좋았다.


식사를 하고 창문을 내다보니, 공항 한쪽에 궁전처럼 생긴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저기가 무엇하는 곳이냐 물었더니, 로얄 패밀리 전용 라운지라 했다. 이 나라는 아직 왕정제라, 왕족이 있어서 그들이 비행기를 탈 때 사용하는 곳이란다. 그들이 타는 전용기에는 당연히 전속 크루도 있는데, 일반 크루중에서 선발되어 배치된다고 한다. 보통 크루들은 기본급 + 비행수당 + 현지 meal pay를 받는데, 그렇기 때문에 비행 스케쥴이 크루들의 생활은 물론 급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로열 패밀리 전속 크루들은, 왕족이 가고자 할 때 언제나 비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스케쥴이 없고 항시 대기하여야 하며, 그래서 비행수당이나 현지 meal pay가 불규칙한 만큼 기본급 비중이 훨씬 높다고 한다. 문득 우리나라 대통령 전용기 같은 건 어떻게 운영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로열 패밀리의 전용기도 모습이 조금 다르다던데, 언젠가 한번 동생이 영국에 갔을 때 전용기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전용기에서 기체 앞부분이 열리더니 페라리가 나왔다고-_-; 과연 돈 많은 나라의 왕족이다...

카타르 공항의 모습. 왼편에 보이는 건물들이 로열 패밀리 전용 라운지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떼우다, 드디어 베를린 행 비행기에 올랐다. 베를린까지는 6시간 가량, 한낮에 떠나지만 도착하면 늦저녁일 터였다. 베를린까지는 작은 비행기로 간다는데, 운좋게도 한국인 크루가 둘이나 된다고 했다. 과연 비행기에 오르니,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해준다. 타지라 그런지 더 반갑고 고마웠다.

베를린까지 타고 간 비행기. 에어버스 모델이라고 하는데, 보잉과 에어버스 구조가 좀 달라서,
크루들도 한 쪽에 전문화(?)할 수 있도록 스케쥴이 나온다고 한다.

출발하자마자 동생 숙소에서 가져온 일회용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보기에는 좀 안좋아도 매우 편했다.

카타르의 유일한(?) 특산품인 대추. 설탕에 푹 절여서 매우 달콤하다. 홍차랑 참 잘 어울렸다.

비행중에 으레 찍는 사진. 저 아래 중동의 산맥들이 보인다.


탑승 후 음료 서비스가 나왔다. 음료 서비스는 6시간 이상 하는 비행에서만 제공되는데, 베를린까지의 딱 6시간 1분이라고-_-; 그럼 5시간 59분이면 안하냐 했더니 절대 안한단다. 하긴 일이 늘어나는데 할까. 아까 인사했던 한국 크루들이 음료를 나눠주고 있는데, 동생이 사진을 찍어주라 했다. 그래도 괜찮냐 했더니, 기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대부분의 한국 크루들이 제복을 입은 모습을 기내에서 찍어주면 좋아한다고 했다.(물론 아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모르는 사람이 그러면 이상한 사람 되는거다-_-;) 마침 망원렌즈를 마운트하고 있어 멀리서 살짝 촬영해주었다. 기분나빠하지 않을까하고 걱정했는데, 자리에 왔을 때 보여주니 너무 좋아했다. 와서 몇년째 일했는데, 일하는 모습 찍은게 처음이라고...찍어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구름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방송으로 곧 베를린 Tegel 공항에 내린다는 안내가 나왔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지만 국내에서는 직항하는 비행기가 없어 주변에서 다녀왔다는 사람이 없어 아는 게 없었다. 다행히 동생이 몇 번 비행을 다녀와서 좀 익숙하다는 게 다행일까.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한컷. 해가 벌써 저물고 있었다.


너무 늦기도 하고, 어제부터 줄창 비행만 해서, 첫날에는 그냥 숙소로 가서 쉬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예약했던 민박집에 찾아가니 우리가 묵기로 한 방에서 Bedbug가 나왔다고-_-; 그거 물린 사진 보니 전신에 난리가 나던데...불안해하고 있으니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께서 당연히 다른 방을 주는데, 이 건물에는 방이 없어서 다른 아파트로 가서 묵자고 했다. 민박집에서 다시 아주머니 차를 타고(벤츠였다!!) 10분정도 떨어진 다른 숙소로 갔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할까. 옮겨간 숙소는 시내에서 더 가깝고, 방도 더 널찍하고 깔끔했다. 거기에 이곳은 취사도구가 따로 되어있어, 아침식사가 필요없는 여행객들에게 조금 더 싼 가격에 준다고 했다.

TV와 침대가 갖춰진 민박집의 방. 솔직히 어지간한 유럽의 3성급 호텔보다 나았다.


아주머니에게 키를 받고 아침 식사 시간을 정한 다음,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둘이 순서대로 씻고 나오니 어느덧 시계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본격적인 여행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졸음이 몰려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설레임보다 피곤함이 우선순위가 높아진걸까.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얘기하기로 하고, 첫날은 그렇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by numa | 2008/11/04 00:13 | 2008_여행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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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11/1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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